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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리포트

미국 연방대법관 닐 고서치 청문회 관전기 기수 : 22기
  • 작성자 : 정원수
  • 소속: 동아일보
  • 연수기관 : 미국 존스홉킨스대

“한 명은 사기꾼(crook)이고, 또 한 명은 광대(clown)다. 그런데 이번에는 연방대법원 때문이라도 꼭 공화당 후보를 뽑아야겠다.” 지난 해 미국 대통령 선거가 열리기 직전 워싱턴의 한 인사에게 선거 때 누굴 뽑을지를 묻자 되돌아온 말이다. 당시 대선 후보인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은 e메일 등 스캔들로 사기꾼 이미지가 있어서 꺼려지고, 코미디 프로그램의 주요 풍자 대상이 될 만큼 좌충우돌했던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는 자주 구설에 올랐다. 그는 왜 대통령을 뽑는데, 대선 후보 자체의 자질보다는 하필 연방대법원을 더 중요한 변수로 봤을까.


미국 대선 직전인 지난해 미국 연방대법원을 둘러싼 상황부터 점검할 필요가 있다. 우선 연방대법관 9명 중 ‘보수의 아이콘’으로 불리던 안토니오 스캘리아 대법관이 2016년 2월 휴양지에서 돌연사 했다. 종신직 연방대법관의 후임을 8년 재임 기간의 마지막 해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지명할지, 후임 대통령 몫으로 넘길지를 놓고 의회에서 논란이 일었다. 한 달 뒤인 같은 해 3월 오바마 당시 대통령은 메릭 갈란드 DC 연방항소법원장을 스캘리아 후임으로 지명했다. 그러자 공화당이 다수인 상원은 인준 청문회를 보이콧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식 이후인 올해 1월 31일 닐 고서치 콜로라도연방항소법원장을 공석인 후임 연방대법관으로 지명했다. TV 채널의 프라임 시간 때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그의 인준을 발표하는 모습도 이채로웠는데, 하이라이트는 약 6주 뒤인 올해 3월 21일부터 4일 동안 상원에서 열린 그의 인준청문회(confirmation hearing) 자체였다. C-SPAN과 NPR을 미국 연방대법관 후보자의 청문회 대부분을 지켜봤다.

 

대통령보다 더 중요한 연방대법관 1명?


우선 미국 연방대법관의 임명절차와 임기 등에 어떨까. 한국의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기능을 합쳐 놓은 미국 연방대법관의 임명 절차는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연방헌법에 따라 대통령이 지명하는데, 반드시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대통령이 후보를 지명하면, 상원 법사위원회가 청문회를 열어 후보를 검증하고, 그 뒤 상원 전체 회의에서 찬반 표결을 한다. 통상적으로는 상원 100석 중 60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상원이 의사절차 규칙을 바꾸는 아주 예외적인 경우(핵 옵션 ‘nuclear option’이라고 부른다)에는 과반인 51명 이상의 동의만 얻어도 된다.


한국과 가장 큰 차이는 연방헌법 3조(Article Ⅲ)의 연방대법관 관련 규정이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The Judges, both of the supreme and inferior Courts, shall hold their offices during “Good Behavior”. 말 그대로 ‘선한 행동’을 하는 동안, 의회의 탄핵이나 기소를 당하지 않으면 평생 직위를 유지할 수 있다. 스스로 은퇴나 사임을 할 수는 있지만 사실상 종신직이다. 임기가 6년인 한국과 달리 한번 연방대법관이 되면 평생 그 직을 유지한다.

 

이 때문에 연방대법관을 신중하게 지명할 수 밖에 없고,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낙마하는 비율도 다른 공직자에 비해 월등하게 높다. 한 조사에 따르면 연방대법관 후보자의 20% 정도가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낙마했는데, 장관 후보자 등 다른 공직자는 연방대법관의 10분의 1 수준인 2%에 불과했다. 한국은 총리나 장관 후보자의 인사검증이 까다로운 반면 대법관 후보자 중 청문회 탈락자가 최근까지 단 1명 뿐이라는 점에서 미국과는 정반대인 셈이다.


실제로 1789년 설립된 연방대법원은 최근까지 연방대법관 112명을 배출했는데, 이들의 재임 기간을 분석한 중간 값(median)이 15.7 년 정도 된다고 한다. 4년 임기인 대통령 임기의 4배 정도 되는 셈이다. 특히 윌리엄 더글러스 대법관은 1939년 3월부터 1975년 11월까지 1만 3,358일, 그러니까 36년 218일을 근무해 최장 근무 대법관 기록을 세웠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 때 임명장을 받은 그는 7번째 대통령인 포드 대통령 시절 퇴임했다.

 

현직 대법관 중에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때 임명된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이 29년의 최장 근무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연방대법원장으로는 제4대 존 마셜 대법원장이 1801년 1월부터 1835년 7월까지 34년 5개월 11일의 최장 재임 기록을 갖고 있다. 마셜 대법원장은 토마스 제퍼슨부터 앤드루 잭슨까지 대통령의 취임 선서를 모두 9차례나 맡았다. 트럼프가 지명한 고서치 후보도 49세라는 젊은 나이를 감안한다면, 20년 이상을 재직할 가능성이 있다.


9명으로 구성된 연방대법원은 사법부의 중추로서, 때로는 행정부와 입법부를 견제하면서, 때로는 주도하면서 미국 사회의 흐름을 바꾸는 역할을 했다. 법률가 출신인 오바마 전 대통령이 가장 존경했다는 마셜 대법원장은 “헌법에 반하는 법률은 법이 아니다”라는 논리로 연방대법원의 위헌법률심사 제도를 확립하는 등 연방대법원의 초석을 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논란이 되고 있는데, 앞서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한국전쟁 관련 행정명령을 연방대법원의 위헌 결정으로 뒤집기도 했다. 무엇보다 1950~60년대 얼 워런 대법원장 재직 시절 흑백분리 교육을 철폐하고, 미란다 원칙을 확립하는 등 미국 사회의 변화를 연방대법원이 앞장 서 이끌었다.


최근에는 연방대법원의 구성이 진보와 보수가 4대 4로 나뉘면서 동성혼 합법화 등 중요한 사건이 5대 4 박빙의 표차로 결론이 바뀌는 사례가 많았다. 이로 인해 연방대법관 1석의 중요성은 무엇보다 더 커졌다. 공화당으로선 보수적인 스캘리아의 후임으로, 오바마 대통령이 임명한 진보적인 대법관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연방대법원의 구성이 진보 과반이 된다는 점에서 절대로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고서치 청문회는 시작 전부터 야당인 민주당의 칼날 검증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닐 고서치 연방대법관 후보자가 상원에서 청문회를 받고 있는 모습. NPR 생중계 화면 캡처.

 

전현직 대법관 사례와 소신 발언으로 호평 받아


“트럼프 만난 적 있나?” “(대법관을 위한) 인터뷰 전에는 만난 적 없다.” 고서치 대법관 후보 청문회에서 실제로 상원 법사위원과 고서치 후보간에 오간 질문과 답변이다. 민주당 법사위원들은 주로 트럼프 대통령, 또는 보수적인 공화당의 영향권이나 가치관으로부터 고서치가 얼마나 독립적으로 판결할 수 있는지를 검증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청문회 자리에서 고서치는 역대 대법관의 이름을 자주 거명했다. 먼저 “판사로서의 독립성”(judicial independence)을 강조할 때 그는 바이런 화이트 전 대법관(1917~2002)의 워딩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고서치의 답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람들이 화이트 대법관에게 판사로서의 철학이 뭐냐고 물었다. 그는 ‘사건별로 결정한다(I decide cases)’고 답했고, 나도 같은 답변을 할 것이다. 그것이 판사로서 가장 좋은 철학이다. 나는 논쟁들을 경청하고, 나에게 전달된 준비서면을 읽고, 동료들의 의견을 주의깊게 듣고, 변호사들 얘기를 듣겠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1962년 지명한 화이트 대법관은 미국 연방대법관 중에서도 지명권자인 대통령과의 관계, 그 친분이 연방대법관으로서 판결에 끼친 영향 등을 설명할 때 아마도 가장 흥미로운 사례(intriguing model)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케네디가 대통령이 되기 전에 영국 여행을 같이 했고, 케네디의 대통령 선거운동을 자신의 근무지인 콜로라도주에서 적극적으로 도왔던 그는 백악관이나 행정부 주요 보직 등의 하마평에 오르다가 최종적으로 연방대법관에 지명됐다. 청문회 때 그는 공화당 의원들로부터 “너무 liberal 하지 않냐”, “대통령과 너무 가깝지 않냐” 등의 질문공세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대법관이 된 이후의 행보는 정반대였다. 낙태나 동성애 등 관련 사건에서 당시 진보적인 경향을 보였던 연방대법원에서 보수적인 의견의 방어막(more conservative bloc) 역할을 맡았다. 이 때문에 “화이트가 ‘케네디의 유산(legacy)’를 배신했다”는 혹평을 들어야 했다. 화이트는 정작 자신이 보수적이거나 진보적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고, 문제를 갖게 되면 그걸 풀려고 노력하는 실용주의자(pragmatist)라고 봤다. 화이트는 “판사는 legal philosophy보다는 each cases의 facts에 따라야 한다”는 소신을 평소 갖고 있었다.


고서치 후보자는 공화당 대통령의 지지로 대법관에 지명 받았지만 대법관으로서 역할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뜻을 강조하면서 화이트의 선례를 예로 든 것이다. 공교롭게도 콜로라도주 연방항소법원 판사인 고서치가 끌어들인 화이트 대법관은 콜로라도주 출신 첫 대법관이기도 했다. 고서치는 청문회에서 “민주당 판사, 공화당 판사가 아니라 이 나라에는 그냥 판사들이 있고, 나는 팩트에 근거해 결정을 내린다(we just have judges in this country. I make decisons based on facts.)”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일부 청문위원들이 과거 연방대법원이 결정한 민감한 사건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를 묻거나, 진행 중인 주요 사건의 찬반 여부를 물을 때마다 그는 ‘긴즈버그 표준’(Ginsberg’s standard)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은 현재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지난해 돌연사한 스캘리아와는 정반대로 ‘진보의 아이콘’으로 불린다. 긴즈버그는 1993년 자신의 인준청문회 때 구체적인 사건(certain questions)에 대해서는 답변을 회피했다.


 “공정하게 (사건을) 결정한다는 선서를 한 판사는 어떤 힌트나 예측, 특정 사건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무관심이나, 판단과정 전체에 대한 것을 공개해선 안 된다”고 강조한 것이다. “No hint, No forecast, No preview”라는 3가지 원칙을 지키기 위해 긴즈버그는 당시 청문회에서 60차례나 청문위원에 대한 답을 거부했다. 청문회 당시 그는 “그것이 (대법관으로서의) 공정함과 독립성을 지키는데 필수적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그 뒤에 구체적이고, 진행 중인 사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질문을 노코멘트로 답변하는 것이 용인되는 ‘긴즈버그의 표준’은, 미국연방대법관 인사청문회의 전통이 됐다. 한국 대법관 후보자에게 국회 인사청문위원들이 과거 낙태나 국가보안법, 사형제 등 구체적인 사안에 대한 의견을 태연하게 질의했던 것과 대조적이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의 하버드로스쿨 동기이면서, 누구보다 법률가로서의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는 고서치의 소신 발언도 인상적이었다. 그는 여성의 낙태 권리를 인정한 1973년의 ‘Roe 대(對) Wade’ 판결을 뒤집으라고 대통령이 부탁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청문위원의 질문에 “문 밖으로 나가겠다(I would have walked out the door)”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사실 트럼프는 대선 후보 선거 캠페인을 하면서 낙태 반대가 대법관을 포함한 판사를 지명하는 중요한 기준이라고 말한 적이 있기 때문에 이 답변은 고서치 후보자가 지명권자인 대통령에 정면으로 맞서는 모습으로 미국 언론에 비춰졌다.


또 한 청문위원이 트럼프 대통령이 과거 “스캘리아의 빈자리를 보수적인 판사(a conservative jurist)로 채우겠다”고 캠페인 때 말했다면서 고서치 후보자도 보수적인 법관 아니냐는 뉘앙스로 공격하자 그는 “나는 판사에 대한 (보수, 진보라는 이념적인) 리트머스 시험을 믿지 않는다(I don’t believe in litmus tests for judges)”고 맞받았다.

 

 

‘닐 고서치 후보자가 이번 주를 훔쳤다’는 제목 아래 보도된 워싱턴포스트 관련기사

 

청문회는 청문회, 정치는 정치


고서치는 4일의 청문회 중 사흘은 직접 나와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했고, 나머지 하루는 관련자에 대한 보충질의가 있었다. 연방대법관의 자질과 소신 등에 대한 고서치의 일관된 답변은 야당인 민주당 청문위원들도 움직였다. 한 민주당 의원이 청문회에서 고서치를 ‘Man of the law’라고 지칭하며 “트럼프가 너를 (연방대법관으로) 뽑은 것보다 잘한 건 없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샴페인을 사서 보내야 한다”고 할 정도로 고서치에 대한 호의적인 언론 보도가 이어졌다. 다른 변수를 빼고, 청문회 자체만 놓고 본다면 고서치는 합격점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미국도 정당정치라는 게 존재했다. 이른바 트럼프케이법안 처리가 무산되면서 표결 처리의 우선 순위에서 자꾸 밀려났고, 표결이 가능해지자 민주당이 필리버스터로 의사 진행을 방해했다. 민주당은 오바마 전 대통령이 지명한 갈랜드 후보자의 청문회를 보이콧한 공화당에 대한 보복 성격도 있었다. 공화당은 결국 민주당의 반대로 정상적인 절차로는 60명의 동의를 받기 어렵다고 판단해 51명 이상의 동의가 필요한 핵 옵션 조항으로 의회 규정을 고치는 강수 끝에 올해 4월 7일 본회의에서 고서치 인준안이 통과됐다.

 

스캘리아 사후 8명으로 운영되던 미국 연방대법원이 14개월 만에 정원인 9명을 채운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지명을 받은 지 65일 만에 연방대법관에 취임한 것이다. 정권교체기 14개월의 공백은 연방대법관 한 자리가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시간이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대법관과 헌재 재판관의 공백이 종종 발생하는데, 공백 그 자체보다는 후보자에 대한 철저한 검증과 법적 절차를 지키는 것의 가치를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서치가 상원 본회의에서 확보한 찬성표는 100명 중 54표, 반대는 45표였다. 공화당 상원의원 51명 전원과 민주당 의원 3명이 추가로 동의한 것이다. 고서치가 확보한 54표는 역대 대법관 인준투표에서 최저 득표를 한 클러렌스 토마스 연방대법관의 52표보다 간신히 2표만 많았다. 흑인으로는 두 번째 대법관인 토마스 대법관은 청문회 내내 성추문 등에 시달렸다는 점에서 실제 청문회에서의 질의 응답과 국회 본회의 표결을 비교한다면 고서치의 득표가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다. 그의 전임인 스캘리아가 찬성 98표라는 압도적인 표를 얻는 것과도 큰 차이를 보였다.


드라마틱한 인준 과정보다 앞으로 고서치가 중요한 사건마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미국의 장래가 달라진다고도 볼 수 있다. 그가 청문회 때 언급한 화이트 대법관처럼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정치적인 성향이나 의도와는 정반대의 길을 갈지, 아니면 평소 “법을 지키는 사자”로 치켜세워온 그의 전임자인 스캘리아처럼 법률을 입안 의도에 충실하게 해석하는 제2의 ‘원문주의자(originalist)’로 남을지 지켜보는 것이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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