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로우 에세이

해외리포트

North Korea in Hawaii 기수 : 22기
  • 작성자 : 정상원
  • 소속: 한국일보
  • 연수기관 : 미국 하와이주립대

지난해 7월 하와이 도착 후 첫 섬 구경에 나섰을 때다. 호놀룰루 다운타운에서 H-201 프리웨이를 타고 서쪽으로 10분쯤 운전해 언덕을 넘어서자마자 푸른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진주만이었다.


2차 세계대전 미국 참전의 계기가 됐던 일본군의 공습 루트를 따라 바다 쪽으로 눈길을 돌리니 네모난 상자 위에 커다란 공 하나 얹혀 있는 시추선 비슷한 모습의 배 한 척이 미 해군 부두에 정박해 있는 게 보였다. 그 배를 보고 바로 “저게 사드 레이더야”라는 탄성이 튀어나왔다.

 

 

해상 기반 X-밴드 레이더(SBX)

 

사드 레이더와 진주만

 

진주만 공습 때 침몰한 애리조나함이 있는 관광구역 진주만 historic site에 들어서자 그 배의 모습은 더 확실하게 눈에 들어왔다. 바로 미국의 해상 기반 X-밴드 레이더(Sea-Based X-Band RadarㆍSBX)였다. 한국에서 사드(THAADㆍ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이야기가 처음 공론화됐던 2014년 언론들은 사드 포대의 핵심 레이더와 유사한 기능을 가진 SBX를 사드 자료사진이나 영상으로 소개하곤 했었다. 실제 사드 레이더 모양과는 차이가 있지만 미사일 탐지를 한다는 점에서 기능은 같다. 그래서 사드 하면 이 SBX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건조 비용이 1조 원(약 9억 달러)에 달하는 SBX는 장거리 미사일을 탐지하고 관련 중요 데이터를 제공한다. 대륙 반대편에서 미국 샌프란시스코 상공에 있는 야구공 크기의 물건도 식별할 수 있을 정도의 고성능 탐지력을 갖췄다. 최대 탐지거리가 4,80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 레이더는 길이 116m, 높이 85m에 무게 5만톤으로, 축구장 만한 갑판 위에 거대한 레이더돔을 탑재해 대기권 밖에서 날아오는 탄도미사일을 탐지한 뒤 요격체계에 통보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SBX 레이더가 일본 오키나와 인근에 배치되면 한반도 전역은 물론 중국 대부분 지역을 감시할 수 있다고 한다. 같은 X밴드 방식의 사드 레이더 유효 탐지 거리 600~800㎞(최대 탐지 거리 1,000㎞ 미만)보다 훨씬 길다.


세계 각지에서 수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는 진주만에서 자신의 기념사진 뒷배경에 넣을 수 있을 정도로 누구나 가깝게, 쉽게 확인할 수 있는 SBX를 보면서 미국의 대(對)북한, 대아시아 최전선에 속하는 하와이의 군사적 위치를 확인하고 북한을 다시 떠올리게 됐다. 하와이 진주만 근처에는 주한미군을 관할하는 태평양사령부도 자리하고 있다.


지난해 7월 이후 여러 차례 진주만을 방문했는데 SBX가 관광구역 건너편 태평양함대 부두에 정박해 있던 적도, 사라졌던 적도 있다. 물론 SBX가 보이지 않았을 때 집에 돌아와 한반도 뉴스를 검색해 보니 북한의 핵실험, 장거리미사일 발사 동향에 따라 SBX가 여러 차례 태평양을 건너 다녔던 사실이 확인됐다. 지난해 9월 5차 북한 핵실험 직후 SBX는 한반도 인근에 배치됐다 한 달 뒤 하와이로 복귀했다고 하고, 다시 지난 1월 1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가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다고 주장하자 SBX가 진주만을 떠나 태평양에 배치된다는 보도가 미국 CNN 등에서 나왔다.

 

 

2016년 8월 하와이 진주만 역사공원. 사진 오른편에 SBX 레이더가 보인다. 바다 건너편 가운데 하얀 건축물이 2차 세계대전 당시 침몰한 애리조나함 추념관.

 

실제로 지난 1월과 3월 한국에서 친지들이 하와이에 여행 왔을 때 진주만을 구경시켜주겠다며 갔지만 SBX는 하와이를 떠난 뒤여서 보여주지 못했다. 최근에도 아이들과 함께 진주만에 갔지만 역시 SBX는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다. 여러 매체 보도에 따르면 SBX는 지금 하와이와 한반도 사이 알래스카 인근에 배치돼 북한의 장거리미사일 발사 실험을 탐지하거나 한반도 동해 근처까지 가서 북한 미사일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특히 최근 북한의 장거리미사일과 핵무기 등이 자주 언급되면서 하와이가 북한 미사일의 제1 타깃이 되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떠돌기도 했다. 4월 말 해리 B. 해리스 주니어 미 태평양사령관이 출석한 하원 군사위 청문회에서 하와이의 미사일 방어망으로는 북한 미사일을 요격하기 어렵다는 설명이 나와 하와이 언론 톱뉴스를 장식하기도 했다. 그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사정권에 있는 하와이에 요격용 무기를 추가 배치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현재 하와이제도 최북서단 카우아이 섬에 미군 미사일방어시스템이 자리하고 있기는 한데 이는 작전용이 아니라 실험시설이라는 해석도 나왔고, 알래스카와 캘리포니아에 배치된 미사일 요격 시스템에 더해 하와이에도 본토 및 하와이 방어용 미사일 시스템을 보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는 등 북한의 군사적 위협 여파가 하와이까지 미치고 있다.


지난 3월 이후 한반도에 전쟁 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다는 보도가 나올 때마다 SBX가 빨리 진주만으로 돌아와 다시 관광지 배경 사진 정도가 되는, 평화의 시절을 기원하게 된다.

 

다양한 주제의 북한 관련 특강

 

연수 중인 하와이대 한국학연구소나 동서센터(East West Center)에서 열리는 특강이나 세미나 주제도 북한 관련된 게 많다. 특히 한국에서는 북한의 핵, 미사일 등 군사 관련 주제가 주로 다뤄졌다면, 이곳 하와이대에선 군사 문제부터 시작해 북한의 경제, 미술, 아동문학 등 주제의 폭이 더 넓었던 것 같다.


지난해 8월 동서센터에서 열렸던 케빈 그레이 영국 서섹스대 교수의 세미나에선 북한과 중국의 밀접한 관계를 중심으로 북한 문제 해법이 제시돼 주목 받았다. 그레이 교수는 우선 rising power 중국이 미국과의 경쟁, 특히 2009년 이후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회귀 전략(Pivot to Asia)에 맞춰 대북 문제에 있어 개입 전략을 확대하고 있다고 봤다. 그렇지만 중국이 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안에 동조하면서도 완전한 제재에 나서지 않는지 이유를 살펴야 한다며, 중국 중앙정부의 동북 지역 개발 필요성과 북중관계를 거론했다.


그는 또 북중관계에 대한 지정학적(geopolitical) 접근법에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며 지난 40여 년 동안 중국의 변화를 이해하는데 있어 국가 중심주의 접근법은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그가 대안으로 제시한 것은 개발 정치학(politics of development) 이론적 접근법이었다. 즉 중국 동북부 지역의 특수성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린(길림성) 등 중국의 동북지역은 중국 중앙정부 입장에선 소수민족이 거주하는 곳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지 않고, 쇠락한 공업지역(Rust Belt)으로 실업과 미취업 비율이 높다. 중국 개혁개방정책 직전인 1978년만 해도 랴오닝(6.29%), 지린(2.25%), 헤이룽장(4.8%) 등 동북 3성이 중국 전체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3.34%에 달했지만 2015년엔 8.59%(랴오닝 4.25%, 지린 2.11%, 헤이룽장 2.23%)로 대폭 감소했다. 게다가 1990년대 이후 한중수교로 한국의 돈이 이 지역에 흘러 들어가고 한국 대중문화까지 유입되면서 동북지역 분리 가능성에 대한 중국 중앙정부의 걱정은 커져갔다.


그 결과 이 지역에 대한 중국 중앙정부의 관심이 랴오닝성 해안 경제 벨트 개발과 창지투 개발 계획 등으로 이어졌고 황금평 개발이나 새 압록강대교 건설 등 북중 경제협력 강화를 낳았다는 게 그레이 교수의 분석이다. 북중간 무역 규모는 2010년부터 남북, 북일간 무역 규모를 추월하게 됐고, 결국 중국 입장에선 북한에 대한 제재를 함부로 발동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는 설명이다.


그레이 교수는 북중 관계는 이제는 중국의 국영기업이 아닌 중소 민간기업이 핵심 투자자 역할을 하는 시장경제의 역동성에 따라 주도되고 있기 때문에 중앙정부가 함부로 조정하지 못하는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 문제 해법을 두고 중국 역할론이 계속해서 강조되고 있지만 중국이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을 함부로 할 수 없다는 현실을 새삼 확인한 자리였다. 이런 분석은 최근 한반도 위기론이 고조되고 미중 정상이 중국의 대북 압박 역할을 두고 밀당을 하긴 하지만 중국이 취할 수 있는 현실적 조치가 거의 없는 게 아니냐는 일각의 분석을 뒷받침하는 것이기도 해서 흥미롭다.


지난해 9월 한국학연구소에서 열린 방문연구원 윤민경 박사의 ‘1966~94년 북한 미술사로 보는 정치학’ 특강도 의미가 있었다. 윤 박사는 1966년 김일성 북한 주석의 ‘조선화’ 교시로 시작된 북한 미술사 변화를 그림 자료를 곁들여 설명했다. 당시 김 주석은 “사회주의 교리로 가득한 혁명 미술 작품을 개발하라”는 교시를 내렸고 그에 따라 북한 작가들의 내러티브가 사회주의 재건에 초점을 맞춘 그림으로 변화했다고 분석했다. 천리마운동을 상징하던 강선 제철공장 그림이나 말을 탄 김일성 장군 그림들이 그것이었다.  

 

 

북한 미술사 특강 브로셔에 나온 북한 김일성 주석 미화 그림

 

그러나 1990년대 들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등장이나 동구 사회주의 몰락이라는 이데올로기적 변환에 따라 북한의 미술 작품은 다시 변화했다. 최근 세네갈에 설치된 북한 만수대창작사 제작 대형동상 등 북한 예술은 외화벌이 수단으로 전락하기도 했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결국 예술도 정치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북한의 현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적 흐름에 따라 조금씩 변화의 모습을 보이려는 북한 미술 작품 변천사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미국 스탠포드대 다프나 주르 교수의 지난 4월 ‘근대 한국 아동문학으로 보는 한국인의 미래상’ 특강도 하와이대에서만 맛볼 수 있는 독특한 강연 자리였다. 이스라엘 헤브루대를 나와 캐나다 UBC에서 박사 학위를 땄다는 주르 교수의 한국어는 유창했다. 그는 특히 일제 강점기 최남선, 이광수로 시작하는 한국 문학사에서 아동문학, 동심이 차지하는 위치로 강연을 시작해 카프 소속 작가들의 동시와 1960년대 남북한의 아동 잡지에 소개된 글을 비교하기까지 했다.


‘지주집에 가져가고/ 마름집에 빚을갚고/이리저리 다뺏기고/쭉정한잎 남았구나’로 끝나는 일제 강점기 이동규 시인의 동시 ‘베를 심어’를 소개한 장면도 인상 깊었고, 60년대 같은 시기 북한에서 발행된 아동잡지의 ‘공산주의 도덕이란 무엇인가’란 글과 남쪽에서 나온 잡지의 ‘먼저 반공정신을!’이란 글을 비교한 대목도 흥미로웠다. 주르 교수는 “60년대 이후로는 아동문학에서조차 남북 모두에서 순수의 시대가 끝난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하와이 교민들과 북한

 

하와이에서 만나는 또하나의 북한은 바로 나이 든 교민들 사이에서 집중적으로 확인되는 반공, 반북 감정이다. 지난 겨울 한국을 뜨겁게 했던 촛불집회시기 호놀룰루에서도 몇 차례 소규모 촛불집회가 열렸다는 걸 뒤늦게 인터넷 블로그를 검색하다 확인하고 아쉬워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사실 현지 한인 라디오방송이나 신문 등에 대대적으로 광고가 나오고, 보도가 되고, 인원이 동원됐던 것은 하와이 촛불집회보다는 이른바 태극기집회와 북한 규탄 성명·집회였다.

 
자주 장을 보러 가는 한인마트에는 겨울 내내 태극기집회를 알리는 포스터가 여기저기 붙어 있었다. 차를 운전할 때 틀어놓는 한인 라디오방송에서도 매 시간마다 태극기집회 광고나 북한 도발 규탄 성명이 나와 깜짝깜짝 놀라기도 했다.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발사하며 도발하는 북한을 규탄해야 하고, 북한과 맞서온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탄핵을 하와이의 태극기 교민들이 나서서 막아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된 논리였다. 한 교민은 “주로 노령의 교인들이 참여하고 있는 한인교회 카톡방을 중심으로 연일 태극기집회 참여를 독려하는 글이 떴다”고 전했을 정도로 대대적인 선전과 동원도 이뤄졌다.


교민들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한국을 떠나온 분들이 기억하는 한국과 박근혜에 대한 애틋함은 지금 한국에 사는 사람들이 느끼는 그것과는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4·19혁명 이후 망명해서 하와이에 살았고, 일제 강점기 하와이에 머물렀던 인연이 있기 때문에 이승만에 대한 옹호 감정도 그 어느 곳보다 많은 게 하와이”라는 해석도 있었다.


지난 겨울 태극기집회가 세 차례 열린 뒤로는 한인마트나 식당에서 북한 관련 포스터도 사라졌고, 최근엔 ‘북한을 규탄한다’는 라디오 광고도 더 이상 나오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바다 건너 한반도에서 북한의 위협을 둘러싼 해묵은 논란이 커지고, 현지 미국 방송에서 하루 종일 북한 뉴스가 끊이지 않는 현실을 볼 때 골치 아픈 못난 동생 북한을 머리에 이고 살아가야 하는 한국인의 숙명이 자꾸 각인되는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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