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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핵, 돈, 교사노조’ - 하와이식 미국 초등교육 기수 : 22기
  • 작성자 : 정상원
  • 소속: 한국일보
  • 연수기관 : 미국 하와이주립대

미국은 United States라는 말 그대로 각 주의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하는 국가로 알려져 있다. 교육 역시 연방정부의 정책 기조가 있겠지만 주 별로 차이점도 많다고 한다. 연수 기간 주로 챙기는 일 중 하나가 아이들 학교생활이라 미국식, 하와이식 초등교육을 관찰하게 됐다.

 

연수 출발 전 미국의 초등학교에 대한 글도 열심히 인터넷 검색을 했는데 지난 9개월여 동안 하와이주 호놀룰루의 한 초등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면서 인터넷 검색에선 알 수 없었던 미국 교육방식의 독특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미국 본토(main land)와 유사하면서도 차이가 있는, 한국 입장에서 보면 깜짝 놀랄 만한 미국식, 하와이식 교육·학교 운영 방식을 소개하고자 한다.

 

21세기 하와이에서 결핵 검사라니

 

미국 초등학교 입학 관련 글을 인터넷에서 검색할 때만 해도 아이들 서류를 관할 교육지원청에 등록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소개가 많았다. 그런데 하와이의 입학 절차는 더 간단했다. 집 주소를 확인할 수 있는 서류 등만 갖춰 아이들을 보내고자 하는 초등학교 행정실에 바로 접수하라는 설명이 학교와 주 교육부 인터넷 홈페이지에 나와 있었다. 실제로 서류 접수 직후 바로 반이 배정되고 등교가 가능해지는 시스템이었다.


다만 본토 초등학교에선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던 까다로운 등교 준비 규정이 바로 결핵(TB) 검사라는 변수였다. 연수를 하게 된 하와이주립대 역시 미국 도착 직후 결핵 보균자가 아니라는 TB clearance 검사를 꼭 받아야 한다는 설명을 강조했는데 아이들 초등학교 입학을 위해서도 마찬가지 절차가 필요했다. 한국에서 검사한 결과는 인정되지 않았다.


문제는 한국 사람이라면 어릴 때부터 소아과나 학교에서 맞는 BCG 예방주사였다. 하와이 도착 직후 CVS 스토어 내 clinic을 찾아 나와 아이들의 TB skin test를 했다. 이틀 뒤 결과를 확인하러 갔더니 아들은 음성으로 나왔는데 나와 큰 딸은 양성으로 판명됐으니 추가 X-ray chest test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예전에 맞은 BCG 예방주사 때문에 이렇게 나온 것 같다”는 의사 설명이었지만 왜 같은 예방접종을 받았는데 누구는 음성이고, 양성인지 설명하지는 못했다.


결국 대학 보건소와 시내 소아과를 거쳐 X-ray test order를 받고, 영상의학센터에 가서 X-ray를 찍고, 마지막엔 결핵 검사 결과 음성이라는 확인서를 챙겨야 하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수백 달러의 비용도 비용이었지만 시간과 마음 졸임까지 생각하면 연수 초기 첫 고비였던 것 같다. 다만 영상의학센터 접수처에서 “X-ray 진단 결과는 일주일 뒤에야 확인할 수 있다”는 설명을 듣고 처음엔 황당했는데 “아이들 초등학교 개학 일자에 맞추기 위해 서류가 급하다”고 했더니 20분 만에 끊어주는 기적 같은 일 처리 덕분에 아이들은 학기 첫날 무사히 등교할 수 있었다.

 

한 한국 학부모는 “한국서 맞은 백신 때문에 TB skin test에서 양성이 나와 X-ray chest test까지 해서 학기 시작하는 날 겨우 맞춰서 학교에 갔더니 당일에 가져왔다고 애 데리고 당장 가라고 해서 하루 늦게 등교했다”는 경험담을 하와이 교민 인터넷 카페에 올려놓기도 하는 등 결핵 검사는 하와이에서 학교를 보내는 외부 사람들에겐 짐이 되는 분위기였다.


결핵만이 아니다. 지난 4월 초 초등학교 2학년 딸이 학교에서 받았다며 브로셔를 하나 내놓았다. 제목을 보니 ‘Preventing and Treating Ukus’였다. Uku? 머릿니(Head Lice)를 하와이에선 Uku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브로셔와 함께 온 쪽지에는 이날 교실에서 머릿니 검사를 했고, 반 아이들 모두 음성으로 나왔지만 평소 관리를 잘 해달라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


결핵이나 머릿니의 경우 1970, 80년대 학교를 다닐 때 한국에선 큰 문제 중 하나였지만 그 후론 점차 사라져가는 후진국형 보건 이슈로 알려져 있다. 물론 최근 들어 한국에서도 다시 초중고를 중심으로 결핵과 머릿니 등이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는 보도가 있긴 했지만 미국에 와서까지 BCG에 머릿니라니, 기분이 참 묘했다.


하와이 도착 직후 간염 보균자가 현지 유명 스시 체인에서 근무하다 적발되는 바람에 수개월 간 이 체인점 수십 곳이 문을 닫았다는 보도가 지역 언론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최근에는 쥐 폐선충을 옮기는 달팽이 때문에 환자가 발생해 폐선충 환자가 나온 마우이 섬 채소가 판매 제한된다는 소식이 연일 보도되기도 한다. 한 교민은 “관광산업이 중요한 만큼 전염 가능성이 있는 질환에 하와이가 더 민감한 편”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는데, 그래도 21세기 미국까지 와서 결핵에 머릿니 검사로 스트레스 받을 줄은 몰랐다.

 

기부, 펀딩으로 이어진 지난 1년

 

아이들 등교 직후 수없이 날아오는 기부(donation), 기금 모금(fund raising) 관련 서류나 브로셔도 처음엔 이해하기 어려웠다. 학교 학부모회(PTSA)가 주도해 직접적인 돈 기부 목표액을 제시하는 건 물론 각종 판매 행사와 이벤트에 기금 모금을 엮어 끊임 없이 이벤트를 이어갔다. 특정 업체, 상품을 광고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모두 학교 재정 지원과 연관된 것이었다. 미국 학교는 한국과 달리 기금 모금이 활발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공립학교에서 이 정도로 노골적일 줄이야.


7월 말 새 학기가 시작하자마자 이 초등학교 가을학기 최대 행사라는 ‘fun run’ 안내장이 날아왔는데 문화 충격이었다. 처음엔 한국의 운동회 정도로 생각했는데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 행사 당일 아이들이 학교 운동장에 모여 30~40분 정도 달리기를 하는(말 그대로 그냥 웃으며 달리는 거다, 한 바퀴 달리면 팔찌를 하나씩 주는 게 전부고, 힘들면 그만 달리면 된다) 이 행사를 계기로 돈을 모으겠다는 안내장 내용은 한국에선 사실상 사라진 찬조금 모금을 연상케 했다.


특히 학생 한 명당 100달러 정도의 기부를 해달라는 구체적 금액까지 제시됐다. 심지어 모금 1등 학생에겐 상품을 준다는 설명도 있었다. 또 각 학년별로 행사 당일 아이들이 먹을 간식을 구체적인 상표명까지 정해서 기부해 달라는 내용도 눈을 의심케 했다. 예를 들어 2학년은 Welchs Fruit Snack이라는 젤리 과자, 3학년은 Cheddar Goldfish Cracker라는 과자를 한 상자씩 가져다 달라는 것이었다. 매년 이 행사에 참여했던 경험이 있는 한국 교포 학부모에게 자문을 구했더니 “매년 학교 예산이 모자라서 기금을 모으는 것이니 꼭 100달러가 아니어도 적당한 액수를 내면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결국 ‘적당한’ 기부금을 내긴 했는데 PTSA에서 날아온 감사 메모는 더 가관이었다. 이 메모에 따르면 ‘fun run 행사는 연중 가장 큰 기금모금 행사이고, PTSA는 이 돈으로 체육·미술·중국어 교사나 보조교사 채용, 학교 스태프의 국제 연수, 기타 학교 학부모 학생 참여 행사 지원 등에 쓴다’고 돼 있었다. 이 가운데 정규수업에 포함돼 있는 체육·미술·중국어 파트타임 교사 등을 교육청이나 학교 예산이 아닌 학부모 기금을 갖고 채용한다는 대목은 한국적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됐다.


그 뒤로도 아이들의 책 읽기와 기부를 연계해 1만 달러 이상을 모금하겠다는 안내장도 날아왔고,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 같은 식당과 제휴해 이곳에서 판매하는 메뉴를 학부모들이 먹고 나면 이 업체가 일정 금액을 PTSA나 학교에 기부하는 방식으로 돈을 모으기도 했다. 특정 가방을 사거나 크리스마스트리를 사는 것도 학교, PTSA에 일정 수익금이 배분된다. 심지어 하와이의 유명 아이스크림인 shave icecream 업체 푸드트럭이 한 달에 한 번 금요일 오후마다 학교에 와서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파는 것도 판매 수익 일부를 기부 받는 조건으로 광고 알림장까지 미리 나눠주는 식이다.


Scholastic 같은 유명 출판사 주최로 학교에서 1년에 두 번 정도 열리는 book fair에서 아이들이 담임교사의 이름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책을 한 권 사면 그 책은 교실에 두고 함께 돌려보는 방식도 특이했다. 아이들 알림장 봉투로 매 달 나오는 Scholastic 온라인 도서 구매 목록을 보고 인터넷사이트에서 책 등을 구입할 때 학급이나 교사 코드를 기입하면 교실에 공짜 책이나 문구가 기증되는 방식도 있다.

 

열악한 교육재정, 교사노조의 힘

 

이처럼 기부와 기금 모금이 일반화한 것은 미국 특유의 기부문화와도 관련이 있다는 설명이지만, 더 근본적 이유는 열악한 교육재정 때문이라고 한다.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 컴퓨터실에는 이번 학기 초 최신형 애플 컴퓨터가 설치됐다. 물론 연방이나 주 교육당국 예산이 아닌 PTSA 등의 기금으로 구입했다고 한다. 부자동네 학교의 경우 이런 기금으로 학교 교보재나 수업 보조 교사까지 추가할 수 있지만 가난한 동네 학교는 교육환경이 더 열악해지는 불평등이 심화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주 정부의 재정이 부족해 교육 예산이 깎일 때마다 공립학교 교사들에게 해고 통지서가 수시로 날아오고, 한국과 달리 일하지 않는 방학 기간에는 교사 임금이 나오지 않는 식이어서 미국 내 교사의 신분 불안은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특히 하와이의 경우 집값 등 생활비가 비싸기 때문에 교사들의 처우는 더 열악하다는 게 하와이주 공립학교 교사노조(HSTA)의 설명이다. 4월 공개된 HSTA 자료에 따르면 하와이주 공립학교 교사들의 평균 연봉은 5만 6,000 달러 정도라고 한다. 교사 초임자 연봉은 4만 6,601 달러로 샌프란시스코, 뉴욕, 워싱턴D.C., 오클랜드 등 하와이 생활비와 비슷한 조건의 본토 10개 도시와 비교했을 때 꼴찌였다.


하와이주 교육 당국은 본토 사범대학을 돌며 모자란 신입 교사를 모집해 온다고 하는데 공립학교 교사 1만 6,000여 명 중 매년 500~800명 정도가 학교를 떠나는 바람에 해가 거듭될수록 교사 부족 현상이 악화하고 있다는 게 HSTA 설명이다.

  

 

하와이 교사노조 소속 교사들이 2017년 2월 하와이 주청사에서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집회를 갖고 있다.

 

급기야 지난 2월에는 ‘Teacher’s Institute Day’로 학교를 하루 쉬면서 교사 6,000여 명이 호놀룰루 시내 주 청사에 모여 집회를 열고 가두행진을 하며 교육환경과 처우 개선을 요구하기도 했다. 또 그 다음주에는 아이들 다니는 학교 교사들이 빨간색 노조 티셔츠를 맞춰 입고 아침 아이들 등교 시간 거리에 서서 교사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선전전을 벌이기도 했다. 학부모들이 아이들을 차에서 내려주다 선생님들과 눈을 마주치고 응원 의미의 경적을 빵빵 울려대는 모습을 보고, 아이들의 교육권 이상으로 교사의 노동권을 보장하고 지지하는 얘기들을 들으면서 부러움이 일었다.


4월 말 하와이주 당국과 HSTA는 2017년 7월부터 4년간 교사 임금을 매년 3% 안팎, 총 13.6% 인상하는 교섭안에 합의했다. 2020년이면 하와이주 초임 교사 연봉이 약 5만 달러로 오르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 문제 해결은 요원해 보였다. 게다가 트럼프 행정부의 반이민행정명령 등 이민정책에 가장 강하게 반기를 들고 있는 하와이주의 경우 연방의 예산 지원이 줄어들 가능성도 높다고 하니 상황 악화는 불가피한 것 같다.

 

한국과 차이 보이는 미국식 학교 운영

 

아이들이 미국식 교육을 받으면서 한국이 아닌 곳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고 느낀 순간은 또 여러 차례 있었다. 지난 1월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온 뒤 학교에서 대피훈련 비슷한 것을 했다고 얘기해 처음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가방 속 알림장에 담긴 학교 교장 명의의 문서를 보니 그게 아니었다.

 

이 문서에 따르면 그날 아침 호놀룰루 경찰국이 학교 인근 주택가에서 강도 사건을 조사하고 나섰고, 학교는 예방 차원에서 교실 폐쇄 조치(lockdown)를 취했지만 조사가 끝나고 곧바로 해제했다는 것이었다. 혹시 용의자 체포 과정에서 총격전이라도 벌어질까 봐 미리 조치를 취한 것 같다. 아이들에게 상황을 물었더니 교실 문을 잠그고 있던 게 전부이고, 별일 아닌 것처럼 느꼈다고 했다.

 

본토보다는 하와이가 총기 사건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는 하지만 미국은 미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주지사, 주교육감 이름이 함께 명기된 교장 명의의 설명문이 상황이 벌어진 당일 곧바로 학부모들에게 전달되는 시스템은 유용해 보였다.


또 미국 학교는 한국처럼 공부를 시키지 않는다는 얘기가 한국에선 많았지만 실상은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유치원(kinder)부터 5학년까지 함께 배우는 곳이다. 그런데 수요일을 제외하곤 모두 오전 7시 55분 등교에 오후 2시 15분 하교다. 심지어 일곱 살 K학년까지 똑같이 등·하교를 하는 것이다. 중간 중간 쉬는 시간도 꽤 있다고는 하지만 한국은 서울 경기를 중심으로 등교시간을 점점 늦추는 기조였는데 하와이에서 학교 다니려면 더 바지런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숙제도 학년이 올라갈수록 많아진다고 한다. 다만 공부보다는 놀이 중심의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이 대부분이고, 학원 대신 스포츠 등 체험형 사교육이 많다는 점은 한국보다 나아 보였다.


물론 중학교 고등학교도 초등학교와 등·하교 시간이 같다는 건 함정이다. 초등학교 아이들을 데리고 집에 올 때 중고생들도 대부분 함께 귀가해 오후 내내 노는 모습을 보면 미국 중·고등학교는 한국처럼 공부를 시키지는 않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하와이 현지에서도 한국식 입시학원인 SAT 대비 학원 광고가 나오고, 본토에선 중고교 사교육 열풍이 더 심하다고는 하는데 고등학생까지 오후 2시면 교문을 나설 수 있는 문화는 한국에선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인터넷이나 컴퓨터를 활용한 교육도 한국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활발했다. 학부모 교사 면담 시간을 signupgenius라는 사이트를 활용해 손쉽게 정하는 것도 인상 깊었고, 초등학교 3학년 아이가 수업시간에 구글 프로그램 작동법을 배웠다며 자랑하기도 했다. 아이들 방과 후 숙제 중 하나인 인터넷사이트 교육프로그램을 통한 영어 수학 공부는 놀이와 학습이 조화돼 유용했고 한국에 꼭 들여왔으면 싶을 정도였다. 대통령 선거 시기, 각 기념일 등에 맞춰 영어와 사회 교과 내용이나 현장 체험학습이 유기적으로 결합되는 것도 한국 교육보다는 조금 더 체계화한 것 같았다. 특히 썸머캠프를 비롯해 다양한 놀이를 통한 교육 방식도 한국식 문화에 맞춰 응용해 볼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다.


미국 본토의 교육이 정확히 어떤지는 잘 모른다. 또 하와이에서, 초등학교라는 교육의 일면을 1년 남짓 겉핥기 식으로 체험한 것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아이들이 어떻게 공부에만 매달리지 않고, 조금 더 재미있게 다양한 경험을 하며 인생을 풀어나가게 할지 더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고마운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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