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로우 에세이

해외리포트

일상화된 미국의 기부문화 기수 : 22기
  • 작성자 : 이상훈
  • 소속: 서울경제
  • 연수기관 : 미국 미주리주립대

“1달러로 뭐 하게?”
초등학교 1학년에 다니는 딸에게 물었다. 요즘 설거지니, 청소니 하는 대가로 50센트를 줬더니 1달러를 모은 딸이었다. “뭐, 좋아하는 과자 이름이 나오겠지”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대뜸 “도네이션(donation) 할꺼야”라는 말이 돌아왔다. 필자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답이었다. 


사실 미국의 조그만 대학도시 콜럼비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광활한 대자연, 맑은 하늘, 우수한 공립학교 시스템도 아니었다. 바로 기부문화였다. 그것도 생활에 밀착된 기부문화. 미국이 기부가 활성화돼 있다는 얘기는 한국에서도 많이 들었지만, 지역 공동체와 결부된 기부 문화는 상상 이상이었다.


일단 우리 두 아이들이 다니는 공립학교(Paxton keeley elementary school)에서는 가정통신문이 매주 배달되는데, 토요일에 록 브릿지(Rock bridge) 등 지역 고등학교에서 열리는 행사가 적지 않다. 최근에는 ‘공룡과 원시인(dinosaur and caveman)'이란 주제로 행사가 열렸다. 나는 두 아이를 데리고 행사장에 갔다.

 

그런데 놀라웠던 것은 그 행사에서 각종 부스를 만들어 원시인의 생활, 각종 공룡 등을 경험하도록 하고 아이들과 부모에게 설명을 해주는 일종의 가이드들이 모두 자원봉사자였다는 점이다. 이번 행사의 주 타깃인 초등학교 아이 입장에서는 동네 형, 누나,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설명을 해 주는 셈. 일종의 재능기부였다.

 

행사를 기획한 곳은 관련 재단이었지만 행사를 진행하고 이끄는 것은 사실상 지역 주민이었다. 자기의 시간을 내 공룡에 대해 배우고 또 행사장에서 그걸 설명해주는 일은 모두 자원봉사자였다.


동굴 벽에 동물 그림 그리기, 스스로 고고학자가 돼 흩어져 있는 공룡 뼈를 찾아 조립하기, 각종 공룡의 조상 알아맞히기 등 부스마다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었다.

 

이 고등학교에서는 두어 달 전에 아이들에게 수학의 흥미를 돋우기 위한 행사도 열렸는데 고등학교 동아리 학생들이 기획했다. 자기들 시간을 내 아이들에게 게임을 설명하고 숫자와 친해지도록 애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런 식의 재능기부 형태는 미국 일상 곳곳에 녹아 있다.


우리 아이들을 비롯해 현지 아이들이 방과 후 많이 배우는 축구 클럽의 경우 코치 선생님들이 모두 자원봉사자다. 그러다 보니 두 달 정도 배우는데, 80~90달러 수준에 불과하다. 유니폼에 축구공을 무료로 주는 점을 감안하면 거의 헐값에 친구들과 축구를 배우는 셈이다. 우리 아이들의 경우 코치 선생님이 필자가 연수 중인 미주리주립대에서 저널리즘 강의를 하는 대학 교수였다.

 

재미있는 것은 축구 훈련이나 시합 후 아이들이 먹는 간식도 모두 기부 형태로 마련한다는 점이다. 관련 온라인 사이트나 회원 간 연락을 통해 이번에는 자신이 음료수, 아니면 스낵을 준비한다고 알려주는 식으로 한다. 서로 큰 돈 들이지 않고 기부 문화를 생활 속에서 배우는 셈이다.


생활에서 접하는 기부 문화는 이뿐만 아니다. 콜럼비아 시의 대표적 공립 도서관 대니얼 분(Daniel boone) 도서관에서는 나이 지긋한 현지인들이 외국인과 대화하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모두 무료로 외국인들에게 영어를 가르쳐 주는 자원봉사자들. 도서관에서 자원봉사자와 영어를 배우려는 사람들을 모집하고 이들을 매치시켜 준다. 무료라 영어 학습자에게 인기가 매우 좋다. 

 

아이들과 가끔씩 들르는 ‘셰익스피어 피자집’의 경우 아이들은 특정 메뉴를 유독 많이 주문한다. 그 메뉴를 시키면 자기들이 다니는 학교에 소액이 기부금으로 적립된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철저한 자본주의 사회인 미국이 건강함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이런 일상화된 기부 문화를 통해 남들과 더불어 사는 방법을 체득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죽기 직전에 하는 단 한 번의 기부가 아니라 생활 속에서 이뤄지는 기부는 재미가 있고 감동이 있어 더 좋다. 


 


아이들이 콜럼비아시 록 브릿지 하이스쿨에서 열린 ‘공룡과 원시인’이란 주제로 열린 행사장의 한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이전 ‘결핵, 돈, 교사노조’ - 하와이식 미국 초등교육
다음 조지프 나이, 콘돌리사 라이스 그래서 더 특별한 수업참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