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로우 에세이

해외리포트

6월이 되면 도드라지는 미국의 LGBT 마케팅 기수 : 22기
  • 작성자 : 이재철
  • 소속: 매일경제
  • 연수기관 : 미국 워싱턴대

6월이 되니 시애틀 시내 곳곳에서 유독 자주 만나게 되는 색상이 있습니다. 이달 초 시애틀 인근 쇼핑몰을 찾았는데 지도, 여행책자 등을 파는 한 상점이 앞 유리창 진열대에 ‘With Pride’라는 문구를 써놓고 실내 장식들을 이 색상으로 물들였더군요. 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단일 색이 아닌 여러 색의 ‘조합’에 해당합니다. 필자의 연구 주제인 미국 사회의 이른바 ‘LGBT 마케팅’과도 맞닿아 있는 바로 ‘무지개’색입니다.


 

LGBT 프라이드 주간을 맞아 관련 마케팅을 펼치고 있는 시애틀의 한 상점

 

문화적 다양성을 자랑하는 미국 사회에서 6월이면 유난히 돌출되는 무지개 색상에는 과연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요. 사소하고 시시콜콜한 주제 같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세계적 기업들은 물론 워싱턴의 주류 정치판에서도 가볍게 생각하지 않는 이슈 중 하나입니다. 보수적 성향이라 자인하는 필자도 이 이슈를 연구하다 보니 LGBT 집단이 상징하는 ‘다양성’의 가치가 기업의 판매 활동은 물론 노사관계, 인재채용 전략 등 여러 면에서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샤오미, 알리바바 등 심지어 중국 기업마저도 다양성과 포용의 이미지를 쌓기 위해 미국 시장에서 LGBT 관련 시민단체에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반대로 그 생소하고 놀라운 마케팅의 세계에서 한국 기업들은 제대로 이름조차 거론되지 않고 있습니다. 

 

먼저 한국 사회에서는 생소한 단어인 LGBT를 소개하자면 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양성애자(bisexual), 트랜스젠더(transgender)의 앞글을 합성한 신조어입니다. ‘성(性)소수자’ 집단을 의미하며 미국 사회에서 1990년대 본격 등장했습니다. 레즈비언, 게이와 같은 개별 단어가 갖는 사회적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만들어진 은어가 언론 등 주류 미디어와 문화 콘텐츠를 통해 반복 사용되면서 성소수자 집단을 통칭하는 단어로 보편성을 가진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 사회의 중심축인 와스프(WASP·백인 주류 계층)의 보수적 성향을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LGBT 이슈는 미국 사회에서 1960년대 인종차별 반대운동이 한참일 때 뒤늦게 ‘곁가지’처럼 확산됐습니다. 1969년 6월말 발생한 이른바 ‘스톤월 항쟁’이 바로 그 것입니다.

 

스톤월 항쟁은 당시 뉴욕의 한 성소수자들의 술집(스톤월 인)을 상대로 경찰의 무리한 단속 사실이 알려지자 분노한 성소수자들이 집단적으로 가두 시위에 나서면서 성소수자 권리 운동을 촉발시켰습니다. 이듬해인 1970년 뉴욕, 시카고,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프라이드 퍼레이드를 시작으로 매년 6월말이면 전세계에서 프라이드 퍼레이드가 열리고 있는 것이지요.

 

이와 관련해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지난 2000년 빌 클린턴 대통령이 매년 6월 LGBT 집단이 자축하는 ‘성 소수자 인권의 달(LGBT Pride Month)’에 대해 공식 축하 메시지를 밝힌 바 있습니다. 켈로그, 존슨앤존슨, 웰스파고, AT&T 등 굴지의 기업들이 LGBT 집단을 상대로 우호적 기업 평판을 쌓기 위해 LGBT 자발방지 시민단체 등에 재정 지원을 하며 신뢰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특히 6월 프라이드 주간이 되면 구글이 자사 로고의 스펠링 일부를 무지개색으로 바꾸는 등 많은 기업들이 LGBT 집단의 사회·경제적 영향력 확대에 주목하며 적극적인 마케팅 전략을 펼치고 있습니다. 6월에 무지개 색상이 상업 광고에 자주 돌출하는 이유도 바로 이런 점 때문입니다.


 

지난해 6월 자사 로고에 무지개 색상을 넣어 마케팅에 나섰던 구글

 

보수적 기업으로 그간 LGBT 마케팅에 눈을 감았던 패스트푸드 업체 ‘맥도널드’도 올해에는 사상 처음으로 퍼레이드가 열리는 지역 점포에서 무지개 색상을 넣은 프렌치 프라이 용기를 사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합니다. 
  


 
올해 제한적으로 LGBT 마케팅을 검토 중인 맥도널드의 관련 포장 용기

 

SNS를 통해 개인이 ‘1인 미디어’로 작동하며 기업과 상품에 대한 평가를 전파·공유해 순식간에 사회 전체의 부정적 여론으로 바꾸는 현실에서 자칫 LGBT 집단에 대한 소극·부정적 기업 대응은 자칫 ‘다양성’을 무시하는 기업으로 매도돼 각종 사회·경제적 리스크를 떠안을 수 있기 때문이죠.

 

일부 LGBT 단체는 매년 차별이 없는 포용적 기업 문화를 확보한 기업들을 조사해 상위 명단을 발표합니다. 순위에 오른 기업들의 근무 환경이 실제 사례 등과 함께 소개되면서 다양성과 포용 문화를 중시하는 기업으로 이미지 상승 효과를 쌓고 있다는 게 이들 단체들의 주장입니다. 단지 LGBT 집단만의 순위가 아닌, 국경 간 이동하는 젊은 해외 인재를 확보하려는 글로벌 기업에도 사내문화 적응 등 구애 대상 구직자의 심적 부담을 낮추는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는 설명입니다.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보잉, 스타벅스, 구글, 페이스북, 애플, 코카콜라, 나이키, 골드만삭스, JP모건, 글락소스미스클라인 등 최고의 글로벌 기업들이 LGBT 집단에서도 차별이 없는 최고의 근무환경을 갖춘 곳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도요타, 현대차 등 상당수 아시아 기업들이 LGBT 집단에서 소극적인 마케팅과 다양성이 부족한 근무환경으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LGBT 집단은 이처럼 다양한 경제적 영향력과 함께 정치적 목소리도 키우고 있습니다. 특히 오바마 행정부의 출현이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재임 당시는 물론 대선 후보 시절부터 LGBT 집단에 친화적인 정치적 제스처를 취하며 집권 후 각종 법·제도 정비를 이행했습니다. 표 몰이를 기준으로 손익계산을 해보면, 보수적 주류 사회에서 LGBT 관련 이슈는 마이너스 요소가 크지만, 역으로 LGBT를 동정하고 지지하는 가정, 학교, 직장 등의 지인들까지 확장하면 지지층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도 있다는 점을 이 젊은 정치인은 놓치지 않았던 것이지요. 집권 후 오바마 대통령은 국무부에 사상 처음으로 ‘성소수자 인권 특사직’을 만들어 동성애자인 랜디 베리를 특사에 임명하는 등 정치적 상징성이 있는 정책들을 곧잘 내놓았습니다. 

 

유럽의 경우 공개적으로 LGBT임을 선언한 정치인이 고위 공직자는 물론 총리까지 오르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습니다. 지난 6월 아일랜드 정치인인 리오 바러드커(38)가 역대 최연소이자 아일랜드의 첫 성 소수자 총리로 선출된 바 있습니다. 이보다 8년 앞선 2009년에는 아이슬란드의 레즈비언 정치인인 요한나 시귀르다르도티르가 첫 여성 총리이자 세계 최초의 성 소수자 총리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2011년 벨기에 유권자들도 게이 정치인(엘리오 디뤼포)을 총리로 선출했습니다. 여담이지만 2007년 협상이 개시된 한·EU FTA에서 교역 파트너로서 한국의 중요성을 역설했던 지한파 정치인인 피터 만델슨 유럽연합 통상 담당 집행위원도 고위직에 오른 대표적 성 소수자로 꼽힙니다.


지난 2015년 코트라가 미국 시장조사 전문기관 자료 등을 분석해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기준 LGBT 관련 시장 규모는 총 8,840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LGBT 소비층에서 가처분소득 비중이 월등히 높게 나타나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미국인 가정을 기준으로 가처분소득이 약 2만 6,000 달러인 것과 비교해 4만 9,000 달러로 매우 큰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자녀 양육에 들어가는 비용 부담이 적은 만큼 크루즈 여행, 신차 구입, 유명 디자이너 의류, 화장품 등 기호 소비 지출이 가장 높게 나타난다는 분석입니다. 

 

같은 해 코트라가 내놓은 ‘키워드로 살펴보는 미국 소비시장 트렌드’ 보고서에서도 LGBT 소비집단은 공유경제·밀레니얼 세대·맞춤형 소비·글루텐 프리 등과 함께 최근 미국 시장의 트렌드를 보여주는 10대 키워드로 꼽힌 바 있습니다. 코트라는 LGBT 소비층의 구매력이 2020년까지 1조 1,000억 달러를 넘는 등 2015년 대비 34%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6월이 되면 무지개 빛으로 치장하는 글로벌 기업들의 발빠른 모습을 지켜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LGBT 집단이 상징하는 ‘다양성’의 가치를 도외시할 경우, 기업은 소비자 집단에서 촉발되는 불매운동과 피고용인으로서 고용주의 차별적 인사정책을 문제 삼는 각종 소송 부담에 시달릴 수 있습니다. 나아가 대국회 활동으로 해당 기업을 압박하는 정치적 공격까지 예상할 수도 있습니다.

 

시각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색의 조합인 무지갯빛. 이를 사회적 소수자 집단이 다양성의 상징물로 차용하면서 이 고운 빛깔은 역설적으로 기업에 치명적 공격성을 드러낼 수도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천국인 미국에서 피고 있는 무지갯빛에 드리워진 기회와 위기의 숨은 두 얼굴. 지금 한국의 글로벌 기업들이 이 무지갯빛을 어떤 색감으로 인식하고 있는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이전 美 백화점들에 ‘최악의 해’가 될 2017년
다음 뉴욕이라는 미술 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