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로우 에세이

해외리포트

뉴욕이라는 미술 현장 기수 : 22기
  • 작성자 : 곽아람
  • 소속: 조선일보
  • 연수기관 : 미국 뉴욕대

수업이 끝난 강의실 벽 스크린에 ‘Christie’s’라는 로고가 또렷이 박혀 있었다. 그 날 받은 수료증을 손에 들고 스크린 앞에 서자 같이 수업을 들은 수강생 아주머니 한 분이 기념사진을 찍어주셨다. 그리고 또 다른 수강생 아주머니의 박수. 항상 완벽하게 화장하고 당장 파티에라도 나가도 될 정도의 완벽한 옷차림으로 수업에 참석했던 이 분들은 “어떤 일 하세요(What do you do)?”라고 물으면 “컬렉터입니다”라고 대답하곤 했다. 컬렉터를 직업의 일종으로 여기는 사람이 세상에 있다는 걸 이번에 뉴욕에 와서 알았다.

 

작년 9월부터 올해 5월 초까지 세계 굴지의 미술 경매회사인 크리스티 산하 교육 기관인 크리스티 에듀케이션 뉴욕의 아트 비즈니스 수료증 과정(The Art Business Certificate)을 수강했다. 수업은 매주 수요일 저녁 6시부터 8시까지 2시간 동안 이루어졌다.

 

 

크리스티 에듀케이션 수업 장면

 

◇ 세계 굴지의 경매회사서 배우다

 

수업은 다섯 개의 대주제인 모듈(module)로 나뉘어 진행되었는데 각 모듈은 5주간이었다. 첫 번째 모듈은 ‘미술과 법’, 두 번째 모듈은 ‘미술과 금융(finance)’, 세 번째 모듈은 ‘미술과 가치평가(valuation)’, 네 번째 모듈은 ‘옥션 비즈니스’, 다섯 번째 모듈은 ‘요즘 미술의 경향’이다. 수업 강사는 매주 바뀌었는데 대부분 뉴욕 미술계에서 내로라 하는 인사들이었다.

 

‘미술과 법’ 모듈에서 이루어졌던 미술법 수업, 옥션 비즈니스 모듈에서 들었던 ‘옥션의 역사’ 수업과 ‘핸드백 옥션’, 미술품 가치 평가 업체 대표가 와서 미술품에 어떻게 가치를 매기는지에 대해 설명했던 ‘미술과 가치평가’ 수업 등이 깊이 인상에 남았다.

 

수업에서 지금까지 전혀 몰랐던 대단히 새로운 것들을 배운 건 아니다. 미술사 전공에 미술 담당 기자를 3년 했었기 때문에 아트 비즈니스에 대해 개략적으로는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현대미술의 ‘심장’이자 아트 비즈니스의 허브인 뉴욕에서 전문가들로부터 수업을 듣는다는 건 분명히 달랐다.

 

예를 들자면 아트페어에 대한 수업 시간에는 뉴욕의 대표적인 아트페어 중 하나인 아모리쇼 창립자가 와서 설명했다. 미술을 전공하지도 않은 그가 방송국 홍보팀 직원을 하다가 우연히 미술 전시 국제 홍보를 맡게 되고, 그를 발판으로 미술에 눈을 뜨게 되고, 나중에는 아트페어 전문가로 거듭나게 되는 과정을 듣고 있자면 아트페어에 대한 지식 뿐 아니라 한 인간의 인생역정을 통해 삶이란 무엇인가를 고찰해 볼 수 있어 좋았다. 지금은 또 다른 아트페어인 아트뉴욕을 운영하고 있다는 그가 강의를 끝내고 수강생들에게 나눠준 아트뉴욕 VIP 티켓으로 아트뉴욕을 관람하러 갈 수 있었던 건 덤이었다.

 

수강생들의 면면을 관찰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첫 번째 모듈인 미술과 법 수업엔 경쟁 심한 뉴욕 변호사 시장에서 활로를 찾기 위한 변호사 수강생들이 꽤 있었다. 미술 시장을 공부해 미술법으로 특화하려는 것이다. 컬렉터가 ‘직업’인 부유한 아주머니들은 당연히 많았고, 가업인 화랑업을 이어받기 위해 공부중이라는 일본인 여성과 다른 분야에 대한 지식을 더 넓히기 위해 수업을 듣는 크리스티 직원들도 있었다. 면면이 화려한 그 사람들 틈에서 나 혼자 영어 서툰 미운 오리새끼인 것만 같아 간혹 주눅이 들 때도 있었지만 결국은 기자(記者)라는 본분, 견문을 넓혀 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라는 연수 목적을 깨닫고는 이내 기운을 차리곤 했다.

 

◇ 아트페어의 도시, 뉴욕

 

지난 봄엔 뉴욕 곳곳에서 열리는 세계 유수의 아트페어를 돌아보았다. 누가 시킨 건 아니지만 스스로 기획한 ‘현장학습’인 셈이다. 5월 초 열린 프리즈(Frieze) 뉴욕은 뉴욕을 대표하는 아트페어 중 하나다. 프리즈는 원래 런던을 본산으로 하는 아트페어인데 2012년 창립 10주년을 기념해 뉴욕에 진출했다.

 

매년 프리즈 뉴욕이 열리는 곳은 맨해튼 동쪽 이스트강(江)을 낀 랜달섬(Randall's Island). 19세기엔 빈민원과 소년원이 있었고, 요즘은 간간이 서커스나 운동 경기가 열리는 공터로 사실 뉴요커들도 잘 모르는 곳이다. 2013년 취재차 프리즈 뉴욕을 방문한 적이 있었지만 ‘출장자’가 아니라 뉴욕 ‘거주자’로 프리즈를 다시 찾자 감회는 남달랐다.

 

‘프리즈’가 기치로 삼는 전위, 그리고 상업주의에 대한 냉소라는 역설적인 이념은 처음 왔을 때만큼 신선하게 와닿진 않았다. 그렇지만 바쁜 출장 중에 주마간산으로 훑던 것과는 달리 시간을 가지고 아트페어를 훑어볼 수 있는 여유는 분명히 있었다.

 

프리즈와 같은 시기에 TEFAF(The European Fine Art Fair)도 열렸다. 네덜란드를 본산으로 하는 우아한 아트페어로 이 역시 최근 뉴욕에 진출했다. 프리즈가 홍대 앞 젊은 디자이너들의 숍이라면 TEFAF는 백화점 명품관 같달까. 프리즈 행사장이 약진하는 신진 작가들 위주로 꾸며진데 비해 TEFAF 전시장은 피카소, 자코메티, 프랜시스 베이컨 등 교과서에 나올 법한 작품을 주로 내놓았다. 그리고 튤립의 나라 네덜란드답게 우아한 꽃 장식. 그야말로 ‘눈호사’를 실컷 즐기면서 미술시장의 최신 동향을 가늠할 수 있는 기회였다.

 

크리스티 에듀케이션의 수업을 듣고, 뉴욕 아트페어 현장을 경험했다고 해서 단번에 ‘미술시장 전문가’가 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NYU의 뒤러 수업을 한 학기동안 들은 것이 미술사 학도로서의 오랜 내 정체성, 역사의 범위에 속하는 옛 그림과 화가들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면 크리스티에서의 8개월은 ‘지금 여기’와 현장에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만 하는 기자로서의 본분을 다시 깨치게 해주었다. 1년간 재성장의 값진 기회를 주신 삼성언론재단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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